
극심한 우울증을 겪던 시절, 모든 것을 놓아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일상도, 미래도, 심지어 생명까지도.
도망치듯 무작정 해외로 떠났고, 못 마시던 술을 진탕 마신 뒤, 풀린 눈으로 아무 지하철이나 탔습니다. 행선지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술집에서 나가라고 했기에 나왔을 뿐, 삶의 목적도 보람도 없던 저는 될대로 되라고 생각했습니다.
밤 12시, 낯선 도시에서, 낯선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인생,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나. 나쁜 일 생기면 뭐 어때 죽기밖에 더 하겠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이해도 안 되는 언어의 지하철 방송을 들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절 흔들어 깨우고 있었습니다.
청소하시는 할아버지의 한 마디.
“이제 내리셔야죠.”
핸드폰 배터리는 꺼졌고, 지하철 역의 시계는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가자” 생각을 한 후
아무 생각 없이 짐을 챙겨 내려 무작정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익숙한 풍경. 가까운 음식점은 새벽인데도 문이 열려 있었고, 거기서는 제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슬픈 생각은 사라지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라며 곱배기를 시켜서 실컷 먹고는 무언가 달라진 기분을 느끼며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죠.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그곳은 바로 제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 걸어서 1분 거리라는 것을요.
처음엔 소름이 돋았고, 그저 어. 이게 뭐야.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후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그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엔 , 실은 너무나 큰 확률을 뜷어야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그 날의 사건은 죽음보다 살기를 택하라는, ‘신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그때는 저에게 신은 왔지만 전 무당이 되길 거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하지만 이미 신은 제 모든 것을 관장하고 계셨습니다.
그저 절 지켜보고 있었던 거죠.
이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극심한 우울증이나 삶의 위기 속에 있다면, 꼭 기억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신은 때때로 우리가 가장 약할 때, 가장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삶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한밤의 지하철, 꺼진 핸드폰, 열린 음식점, 익숙한 거리… 이 모든 우연이 결국 살아야 할 이유로 이어지는 운명일 수 있다는 걸
무당이 된 지금의 저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습니다 ㅎㅎ.